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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수번호 | 20190416001 | 처리상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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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안신청인 | 서** | 신청일 | 2019-04-16 07:50:28 |
| 제안유형 | 제안 | ||
| 제안제목 | '지학사' 윤리와 사상 교과서 75쪽 '육바라밀'에 대한 설명 중 '인욕바라밀'에 대한 설명 수정 요청드립니다. | ||
| 개요 | 안녕하세요 저는 충남외국어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윤만길이라고 합니다. (제가 핸드폰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학년부장선생님 전화로 인증했습니다)
윤리와 사상 교과서(2013년 교육부 검정이라고 나왔긴 한데 제가 정확히 어느 판인진 모르겠는지라 사진을 찍이서 첨부파일에 올리겠습니다,)의 일부 내용에 있어 학생들이 불교윤리사상의 육바라밀 중 인욕바라밀 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한정적인 단어 선택으로 인해 혼선의 소지가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이렇게 수정요청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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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행 및 문제점 | 불교윤리사상을 다루는 부분인 75쪽을 보시면 육바라밀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는데요, 여기서 인욕 바라밀이 "욕된 일을 당했을 때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으로, 괴로움을 받아들여 참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과서에 작성된 "괴로움을 받아들여 참는 것을 의미한다"는 어구에 대해서 인욕바라밀에 대한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해 매우 우려가 깊습니다. 이 어구를 통용되는 국어 어휘의 뜻으로 받아들일 경우 인욕 바라밀은 마음속에 괴로움을 꽉 누적시키며 참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욕바라밀의 인욕이란 "참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냥 성나는 마음을 꾹 누르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마음에 걸리거나 휘둘리지 말고, 잘 놓아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올라오는 마음이 공(空)한 줄 바로 깨우쳐 알 수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성나는 마음이 놓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욕 바라밀은 지혜로운 안목으로 행할 일이지, 그냥 꽉 눌러 참기만 한다고 해서 인욕이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억지로 참는다면 도리어 마음에 병을 만드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더 위험한 일입니다. 마음에 꽉 눌러두면 언젠가는 넘치고 폭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눌러놓은 마은 풀리지 않은 채 그대로 가라앉아 깊은 의식 속으로 자리잡아 업이 됩니다. 이것은 해결이 아니라 잠시 뒤로 미루어 놓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 결과는 또 다시 언젠가 인연을 만나면 그대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해결하지 못한 과보로 더욱 커진 업이 된 채로 말입니다. 따라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바른 알아차림을 가지고 온전히 그 마음을 비우고 놓아서 온전히 풀고 가는 것이, 경계가 닥쳤을 때 그것에 얽매여 화내고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수행의 재료로 돌릴 수 있어야 하는 것, 그것이 참된 인욕바라밀의 실천이나 수행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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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선방안 | 따라서 저는 지학사 교과서로 윤리와 사상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인욕바라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과서의 "욕된 일을 당했을 때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으로, 괴로움을 받아들여 참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어구를 "욕된 일을 당했을 때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으로, 괴로움을 놓아버리고 오히려 괴로움 자체를 수행의 재료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로 수정하면 어떨지 제안 드리고 싶습니다. 아니면 인욕바라밀의 참된 뜻과 내용을 제 필력보다 더 잘 표현하는 표현으로 바꿔도 매우 좋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인욕바라밀의 올바른 이해에 대해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불교윤리학을 가르치시는 윤원철 교수님께 문의드린 결과 "안녕하십니까? 인욕에 대한 윤만길 군의 이해에 동의합니다. 아집을 바탕으로 해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을 일으키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한은 자기에게 거슬리는 일을 참을 수 없지요. 억지로 참을 수도 있겠지만, 윤만길 군이 지적했듯이 그건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겠습니다. 인욕바라밀다는 인욕의 완성 즉 완전한 인욕을 의미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을 버려야 하고 결국 아집을 완전히 놓아버리고 비워야 하는 것이겠습니다. 출판사가 윤만길 군의 지적을 받아들일 안목과 책임감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라고 답신 주셨습니다. 더불어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신성현 교수님께도 문의드린 결과 "윤만길 학생에게, 안녕하세요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신성현 교수입니다. 우선 보내준 메일은 아주 흥미 깊게 잘 읽었고, 교과서에 나와있는 인욕바라밀의 설명은 학생의 의견대로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동의합니다. 바라밀(波羅蜜)은 인도 고전어인 paramita의 음사어로 paramita는 '저 언덕에 도달다'는 뜻이며, 곧 저 깨달음의 세계로 간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의 지적대로 인욕바라밀은 깨달음을 세계로 가기 위한 수행의 한 방법으로서 인욕을 행한다는 의미이지, 일반적인 수준의 참는다는 의미를 훨씬 상회하는 고차원적인 행위입니다. 아울러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추구하는 대승불교의 수행법 가운데 하나가 육바라밀임을 생각한다면, 인욕바라밀은 인욕을 통한 깨달음의 추구라는 자기 이익의 실현뿐만 아니라 인욕을 통한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의미도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윤만길 학생이 출판사에 보낼 예정인 메일은 그대로 보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동료교수와도 상의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내용을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해서 인격적으로, 학문적으로 훌륭하고 모범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응원합니다. 신성현 합장.“ 이라고 답신 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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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효과 | 학생들이 '육바라밀' 중 불교의 인욕 바라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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