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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번호 20250828001 처리상태 답변진행중
제안신청인 강** 신청일 2025-08-28 21:42:26
제안유형 건의
제안제목 제주 해녀항일운동을 교과서에 등재해주세요
개요 제주해녀항일운동 역사교과서 등재 요청의 건


제주해녀항일운동의 의의와 과정

제주해녀항일운동(제주해녀항쟁)이란.
연인원 1만7130명이 참여하고 238회에 이르는 집회와 시위를 거듭한 결과 승리를 따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비천한 신분에서 경제의 주역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일이 일제 강점기에 그것도 여성들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들이 제주 해녀들이다. 3.1운동으로 시작되어 1920년대를 휩쓸고 간 항일운동이 잦아들 무렵인 1932년에 여성들만의 힘으로 가장 완벽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면서 이겼고, 그로인해 자신과 가족들은 물론 제주도의 경제지도도 바꿨다.

일제강점기, 무수히 많은 항일운동 가운데 제주도에서 일어난 해녀항쟁은 여성들, 그것도 사회적으로 전통시대부터 천역(賤役)으로 천시 받던 해녀들이 일으킨 운동이었다. 해녀항쟁은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고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었던 항일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항쟁의 발단
1883년 7월 25일 「한일통상장정」이 체결된 뒤 제주바다에서 조업이 가능해진 일본어민들이 잠수기선을 몰고 와서 바다 밑바닥까지 훑어서 모조리 긁어가기 시작했다. 씨알도 남기지 않는 그들의 수법에 전복의 숫자뿐아니라 크기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결국 제주 어장은 황폐화되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고통이 있었다. 바로 각종 형태의 조합을 통한 일제의 수탈이었다.

일제강점기 제주도지사는 일본인이었다. 일본식으로 제주도사라 불렸던 일본인도지사는 이권이 매우 컸던 해녀조합장을 겸임했다. 해녀조합은 말이좋아 조합이지 일제의 제주도 경제수탈의 창구였다. 해녀들의 권익을 보장해 주어야 할 조합이 철저히 어용화되어 그 횡포가 극에 달하였는데 조합비 인상은 물론 물질을 시작도 하지 않은 여자아이나 늙어 물질을 할 수 없는 해녀의 조합비까지 강탈했으며 지정가격제를 시행하여 해산물의 매입 가격을 터무니없이 싸게 책정하고 해녀들이 글을 모르는 점을 이용해서 저울을 일상적으로 속였다.

항쟁의 전개과정
결국 해녀들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 속지 않기 위해 글을 배우고 저울보는 법을 익혔다. 이들을 도운 이들은 제주청년회라는 항일운동조직이었다. 이들은 일제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다양한 형태와 이름을 가진 비밀조직을 계속 이어갔는데 그들이 한 가장 주목할 만한 일은 학교를 만든 것이고 야학등을 통해 여성들에 대한 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특히 해녀들이 야학에 적극 참여하였다.
해녀항쟁의 주역들이 다녔던 하도강습소 해녀들은 청년 교사들로부터 한글·한문 뿐만 아니라 '농민독본' '노동독본' 같은 계몽서를 배웠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삶이 변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키고 돌보기 위해 뭉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해녀회를 조직해서 일산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930년 성산포에서 저울을 속인 사건이 또다시 벌어졌을 때 이것을 시작으로 해녀항쟁의 불씨가 발화했다. 이들은 더 이상 예전의 해녀가 아니었던 것이다.
1931년에는 하도리 해녀들이 캐낸 감태와 전복의 가격을 조합 측에서 강제로 싸게 매기려 하자, 해녀들이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거센 항의에 부딪힌 조합측은 정상적인 매입을 약속했으나 몇 달이 지나도록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해녀들은 제주도사이자 제주해녀어업조합장인 다구치가 전도를 순시하던 중 세화장날인 1932년 1월 12일에 구좌면을 통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날이 되자 세화경찰관 주재소(지금의 구좌파출소) 동쪽 네거리에 1000여명의 해녀들이 일시에 모여들었다. 시위대는 호미와 비창을 휘두르면서 만세를 외치며 세화장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다구치가 탄 자동차를 포위해서 시위를 벌였다. 결국 다구치는 해녀와의 대화에 응했고, 1만 여 명의 구경꾼이 지켜보는 가운데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이 손 쉬울리 없었다. 일제는 이러한 일들을 여자들이 주도했을리 없다고 주장하며 대신에 하도강습소를 만들어 해녀들에게 글을 가르친 진보적 항일운동조직인 혁우동맹 사람들을 체포해 가기 시작했다. 이에 해녀들이 항의하자 해녀들을 마구잡로 잡아들였다. 30명의 해녀들과 함께 체포된 하도리 해녀 부춘화·김옥련·부덕량은 자신들이 주동자이며 해녀들끼리 함께 벌인 것이고 혁우동맹은 관계가 없다고 끝까지 주장했다.

어느 해녀는 이때 고춧가루 물을 코로 붓는 고문을 당하면서, ‘내가 물질을 얼마나 했는데 까짓 물고문이야 참겠지’ 했는데 실로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고 한다. 어떤 해녀는 등짝에 채찍으로 찢어진 흉터가 평생 남았다. 일제는 고급인력인 해녀들을 마냥 감옥에 가두어 둘 수만은 없었다. 해서 끝까지 버틴 부춘화, 부덕량, 김옥련등 세 명의 해녀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석방시켰다. 이들도 결국 기소되지 않고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었다. 하지만 일제는 혁우동맹은 물론 그들과 관련된 제주도 항일운동조직을 찾아내어 모조리 파괴했다. 대대적인 검거결과 40명이 재판에 회부되어 무려 22명이 실형을 받았다. 목포형무소 건립이후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형량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항쟁의 결실
이후 해녀들은 해산물을 제값을 받아 팔 수 있게 되었고 해녀조합비가 현실화되었다. 제주에서 나오는 생산품 중 가장 환금성이 높은 상품인 해산물을 가지고 제주 경제의 주역이 되었고, 부의 지도를 바꿨다. 더 이상 해녀를 비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 감히 집안을 살리고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마을을 부유하게 하는 해녀들을 무시하겠는가. 제주에서 가장 능력있는 전문직 여성이 된 것이다.

이후 해녀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더욱 체감하여 자신들을 도왔던 청년들의 뜻을 이어 전도 각지에 학교를 세우는데 힘을 바쳤고 현재 제주도의 거의 모든 초등학교들은 해녀들의 피와 땀으로 기초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어머니들이 물질하여 가르친 아들들이 해녀들을 가르쳤고, 그 해녀들이 배움을 토대로 깨치고 일어나 시위를 조직했고, 행동했고 그로 인해 청년들이 잡혀갔고 또 이들을 구출한 이들이 해녀들이었다. 이 해녀들은 청년들의 어머니이고 누이였다. 속을 들여다보면 남녀 구분없이 제주도민 전체의 항쟁이었다.

이러한 운동이 알려지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에 근 현대사 중심의 역사교과서 재구성을 제안합니다. 첫걸음으로 자랑해야 할 역사 해녀항일운동의 역사교과서 등재를 요청합니다. 제주도민의 염원을 담아 요청드립니다.

함께 하는 이들

박찬식 :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장 010-2693-0880
한림화 : 작가. 해녀 연구가, 전 제주대 교수, 010-8661-2761
강창협 : 9대 해녀항일운동 기념사업회장
김태민 : 11대 해녀항일운동 기념사업회장
강승부 : 12대 현재 해녀항일운동 기념사업회장
해녀항일운동 기념사업회 사무국 : 010-7375-7143
고진숙 : 역사 작가, 재주문화연구가 010-2284-0487
양시영 : 여성독립운동 기념사업회 대표 010-5351-2107
강성분 : 여성독립운동 기념사업회 발기이사 010-4804-5934
현행 및 문제점 제주해녀항쟁에 대한 교과서 등재 요청의 이유
제주도 해녀항쟁은 연인원 약 17,000여 명이 참여하였고 대소 집회 및 시위 횟수가 약 230여 회에 달하는 대규모 시위운동이었다. 규모로 보나 성공적인 결과로 보나 여성항쟁으로는 세계사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항쟁이었고 자부심을 가지고 세계에 알려야 할 자랑스러운 여성의 역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우리나라의 역사책에서 조차 찾아 보기 힘든 것인가? 우리의 역사에서도 중요시 여기지 않으면서 어찌 세계 여성의 역사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것인가. 여성들이 나라를 지키는 일에 보조 역할에만 머물지 않은 수많은 기록을 적극적으로 알린다면 남자만 목숨걸고 나라를 지켜왔다는 편견에 10대, 20대 남성들이 쉽게 선동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그렇다면 갈라치기에 이용되며 극우보수화 하는 젊은 층이 올바른 정보를 적극으로 접할 기회를 가지게 해야한다. 공인된 역사로서 교과서 등재가 필수적이고 교과서에 실리면 역사시험문제에 출제된다면 자연스럽게 접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들이 병역에 대해 가지는 피해의식은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그들만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일이며, 이름없는 수많은 여성들도 남성못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문화,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여 세계로 알려지는 것은 너무나 좋은 환경이 이미 만들어졌다.

그동안 해녀항쟁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
해녀항쟁이 알려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4.3사건이다. 제주는 4.3의 아픔을 70년 넘게 입밖에도 꺼내지 못했다. 자연히 모든 것이 침묵당했다. 제주인은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했고 어떤 일에도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그 당시 배웠다는 사람, 똑똑하단 사람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항쟁의 성격이 일제의 탄압 중 경제적인 수탈에 맞선 것으로서 당장 목숨거는 일이 아니어서 크게 자랑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제가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악랄하게 끊임없이 원한 것이 바로 경제적 수탈이었다. 모든 것이 그와 맞물려있기에 물산장려운동도 국채보상운동도 중요한 독립운동 사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국채보상운동은 사실상 실패하였음에도 주요한 사례로 남은 이유는 당시 언론의 도움으로 운동이 광고가 되었고 그 자료가 남은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그에 비하면 제주해녀항쟁은 국사적, 세계사적으로 기리고 알리고 자부심을 고양할 중요한 일임에도 너무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의 초기 발기이사로 이 일에 뛰어들었을 때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활약에 감탄하며 뿌듯했고 엄청난 사례에 놀랐으며 나의 무지와 나만큼이나 무지한 세상에 실망했었다.

무장독립운동에 투신한 남자현등 여러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이제야 알려지기 시작했고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3.1운동처럼 제주민들 거의 전체의 싸움이었고 단체 독립운동의 귀중한 성공사례이다.

그들이 벌인 해녀항쟁은 한반도 변방 제주섬에 있었던 3대 항일운동 중의 하나가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운동이자 항일운동의 하나가 되어야 하는 점은 이 때문이다.

제주해녀항쟁의 기념현황
2003년 김옥련을 시작으로 부덕량·부춘화 해녀들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이 이뤄졌다. 혁우동맹 사람들에 대한 서훈도 차례차례 이뤄졌다. 그러나 혁우동맹을 만들고 야학을 만들었던 하도리 해녀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교사인 오문규에 대한 서훈은 아직도 이뤄지고 있지 않다. 오문규와 그의 아들은 제주 4·3을 거치면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오문규의 며느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학살을 벌인 다랑쉬굴 비극의 희생자가 되었다.

2006년에 해녀문화의 보존을 위해 해녀박물관을 개관하면서 해녀항쟁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해녀들의 2차 집결지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상도리 연두망 작은동산에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을 세웠다. 그 앞에는 해녀항쟁의 주역인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의 흉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개선방안 1) 역사교과서에의 등재 – 해녕항쟁은 나라와 가정을 지키는데 있어 여성들의 역할이 피동적이거나 수동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 동시에 남녀가 각자의 방식으로 협력하여 역사적 사건을 함께 승리로 이끌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숨은 역사를 찾아내고 알리는 것은 우리 미래세대의 의식의 근간을 채우는 중요한 일이다. 극우 세력들이 리박스쿨등을 만들어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도록 신선하고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이야기들로 역사적 자존감을 채워야한다. 그 시작은 정책적으로 역사 교과서에서 근 현대사의 분량을 늘리고 더 많은 역사를 알려 젊은이들이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한다. 평가를 떠나 사실 중심으로만 알려도 리박스쿨같은 자들을 막을 수 있다.

특히 해녀항일운동은 역사적 사건으로서 여성공동체의 힘을 보여주고 자부심을 고양시킬 수 있는 중요한 사례이므로 그 가치와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역사에서 홀대받는 변방의 역사 그중에서도 제주의 역사는 4.3사건이 알려지기 이전까지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제주에는 4.3이라는 가장 비극적인 역사만 있지 않다. 오랜 세월 제주가 숨겨두었던 역사가 의미있는 이야기로 젊은이들의 가슴에 전해지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기대효과 현재 공무원시험,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나, 수능시험을 보면 1천년 전에 일어난 전쟁도 아닌 전투들, 공산전투, 고창전투 등의 순서를 외워야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출제된다. 독립운동사에 대해서도 운동의 성격과 의의, 감정이입이 필요한 실제 처참했던 과정들 보다는 군대나 단체, 전투의 순서등을 외우게 만든다. 스토리텔링이 없는 아주 재미없고 메마른 교육이 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진짜 감동을 주어야 한다. 이름과 순서의 역사가 아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교과서에 실리고 시험에 나오게 해야 한다. 시험에 나와야 공부하고 진실을 받아들인다. 그 시작이 근,현대사의 교과서 등재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기존과 달리, 숨겨지고 외면했던 역사를 드러내는 것이다. 교과서 내용의 비중이 달라지면 자동적으로 시험문제의 비중이 달라지고 학생들은 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머릿속에 심어지게 된다. 배우고 알아야 받아들이고 판단할 기회라도 주어진다.

감동적이 진짜 역사를 알리는 일,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진 여성과 지방의 역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알리는 일. 독립운동과 한국전쟁 이후의 회복에,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여성이나 지방이 무임승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바란다.

해녀항쟁은 좋은 시작이 될 것이다. 역사 뿐 아니라 문화적 가치는 더욱 높다. 이야기와 뮤지컬, 예술등 문화사업소재로의 영역확대와 세계화가 가능하고 연관된 교육관광상품의 개발로 확대할 수 있다. 깊이를 더한다면 여성 공동체 문화의 확대가 가능하다. 이는 결국 여성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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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기관 ㈜지학사 처리상태 제안답변완료
답변일 2025-08-29 17:51:12
답변내용 안녕하십니까?

주신 의견 확인하였습니다.

관련 교과 집필진에게 전달하였습니다.

다만, 교과서는 2022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근거하여 개발되었고, 엄격한 검정 심사를 통과하여 개발되었습니다.

주신 의견은 교육과정 성취기준, 학습자 수준, 지면상의 한계 등으로 현재는 반영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교육과정의 변화와 개정 등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저희 교과서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의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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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기관 ㈜미래엔 처리상태 제안답변완료
답변일 2025-09-01 10:19:07
답변내용 안녕하세요.미래엔입니다.

요청해 주신 의견은 집필진에 전달하여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2025년도부터 적용된 교과서의 경우, 2022개정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에 따라 개발되었습니다.
따라서 출판사 자체 판단으로 수정 반영하기는 어려우며, 교육과정상의 논의가 필요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교과서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드리며,
더 나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첨부파일 첨부파일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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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기관 ㈜천재교육 처리상태 제안답변완료
답변일 2025-09-01 10:19:45
답변내용 안녕하세요? 저희 역사과 교과서 내용에 관심과 애정을 보여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견을 염두에 두면서 향후 역사과 교과서 개발에 매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첨부파일 첨부파일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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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기관 ㈜비상교육 처리상태 제안답변완료
답변일 2025-09-02 11:32:03
답변내용 안녕하세요. 비상교육입니다.
교과서에 대한 제안 감사드립니다.

보내 주신 제안은 잘 확인하였으며,
교과서 집필진에게 전달하여 논의해 보겠습니다.
22개정 한국사1,2 교과서는 22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개발된 것으로, 현재 출판사 자체 판단으로 수정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주신 제안은 앞으로 교과서를 개발하는 데 참고하여 더 좋은 교과서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교과서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보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첨부파일 첨부파일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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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기관 동아출판㈜ 처리상태 제안답변완료
답변일 2025-09-02 13:22:12
답변내용 안녕하세요. 동아출판입니다.

제안해 주신 의견은 집필진에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22개정 교과서는 교육과정 성취기준과 검정 기준에 근거해 개발되므로
교과서 발행 이후 내용 추가 및 수정 사항은
출판사 단독으로 판단하여 반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향후 교육과정 변화와 개정 방향이 마련될 경우
보내주신 제안을 염두에 두고 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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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기관 (주)리베르스쿨 처리상태 제안답변완료
답변일 2025-09-02 14:10:47
답변내용 안녕하세요. 리베르스쿨입니다.

당사 교과서에 관심과 따뜻한 애정을 보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말씀해 주신 의견을 소중히 참고하여 앞으로의 역사 교과서 개발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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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기관 씨마스 처리상태 답변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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