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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신청
민원신청
| 접수번호 | 20241123200245001 | 처리상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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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원제목 | 식민사관(임나=가야)은 정당한가 | ||
| 민원유형 | 교과서 수정·보완 | 신청일 | 2024-11-23 20:02:45 |
| 페이지 | 교과서 종류 | 서책형 교과서 | |
| 민원내용 | 교육부 민원청구 2-2 (20241123) 강감찬입니다.
미래엔 답변에 궁금한 점이 있어 다시 질문 드립니다. 교육부 검정 2019. 11.27 고등학교 한국사 Mirae N (미래엔) 미래엔 답변 - 1. 가야에 대한 문헌 기록은 매우 희소합니다. 또한 그 명칭도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나라 이름을 대가락(大駕洛)이라 하고 또한 가야국(伽耶國)이라고도 하니 곧 여섯 가야(伽耶) 중의 하나이다."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는 신라의 국호가 사료에 따라 시라, 사로, 신라, 서라벌, 서벌 등 다양한 명칭으로 기술된 것과 같습니다. 또한 임나가라 또는 임나라는 명칭도 삼국사기(강수 열전), 광개토대왕릉비,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에서 확인된 바 있습니다. 임나가라의 정체와 위치에 대하여 학계에 여러 의견이 존재하는데, 공통적으로 임나가라 역시 가야에 속하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 교과서에는 금관가야라는 명칭이 있습니다. 그런데 광개토태왕릉비문에는 금관가야와 가야라는 문구나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교과서의 금관가야와 광개토태왕릉비문의 임나가라는 전혀 다른 명칭일 뿐만 아니라 비문의 가라를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가야와 등치 시킬 만한 아무런 사유나 근거가 없습니다. 금관이 임나와 같을 수 없으며, 라(羅)와 야(耶)도 완전히 다른 문자입니다. 단지 414년 광개토태왕릉비문에 한자로 표기된 임나와 가라는 삼국사기 강수열전에 나오는 임나와 가량, 진경대사탑비문에 임나왕족의 임나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임나가라의 위치가 김해인지 어디인지 어떠한 위치적 사료와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심상소학보충교재(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자료)에 경상남도 김해의 가라국을 임나라고 한 것에 그 연유가 있어 보입니다. 일본 학계의 식민사관(임나=가야)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혹시 교과서 한국사 미래엔도 일본서기 계체기에 나오는 임나 4村 金官·背伐·安多·委陀의 金官을 염두에 두고 금관가야를 편찬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러한 교과서 편찬 서술은 우리 역사와 일본 역사를 뒤죽박죽 섞어 놓아서 학생이나 학부모 시민은 매우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❶ 미래엔 교과서에는 임나가라를 서술하지 않았습니다. 삼국사기(강수 열전), 광개토대왕릉비,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에서 임나가 확인됨에도 불구하고 임나가라를 서술하지 않은 것은 식민사관(임나=가야)을 일시적이지만 들어 내놓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임나와 가야는 병존할 수 없는 국명(지명)이라 생각되지만 혹시 임나가라를 서술 해서는 안 된다는 편수지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본 교과서에는 임나와 가야를 병존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 학계가 교과서에 앞으로 가야를 없애고 임나만 서술하려는 절차가 있나봅니다. 문제는 우리 교과서 한국사에 가야를 없애고 임나를 전면에 내세울 시기가 언제쯤인지 궁금합니다.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❷ 광개토태왕릉비문에는 ‘금관가야’가 없지만 교과서에는 ’금관가야’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가락, 가야, 금관국, 금관, 가야국, 가야, 남가야, 가라국 등의 표현은 있습니다. 그러나 ‘금관가야’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역사 사료와 관련 없는 ‘금관가야’라는 명칭을 지어낸 것에 대한 출판사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참고로 삼국유사 5가야에 ”금관, 고령, 비화, 아라, 성산이다.”로 되어 있습니다. 즉 금관은 있으나 금관가야는 없습니다. 이 금관을 금관가야라고 한다면 교과서 한국사에는 ‘금관가야’의 가야 즉 ‘금관가야가야’라는 표현을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❸ ”공통적으로 임나가라 역시 가야에 속하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라는 답변은 출판사의 자체적인 답변인지 아니면 검정과정에 관여한 교육부의 답변인지 궁금합니다. ❹ ”공통적으로 임나가라 역시 가야에 속하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라는 답변에서 임나가라가 가야에 속한다고 전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가야라는 명칭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명칭입니다. 414년에 장수왕의 비문 기록자가 타임머신을 타고 통일신라 경명왕 8년(924)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와 김부식의 1145년 삼국사기나 1281년 승 일연의 삼국유사를 보고 다시 414년으로 돌아가 광개토태왕릉비문을 기록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414년 당시에 가야라는 명칭이 어떤식으로 어떻게 존재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떠한 사료에도 414년에 가야라는 명칭은 없습니다.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임나가라 역시 가야에 속하다고 전제하고“에서 아무런 근거도 없는 가야의 실체가 궁금합니다. 설명 부탁드립니다. ❺ 학계라는 명칭에 대하여 궁금합니다. “임나가라의 정체와 위치에 대하여 학계에 여러 의견이 존재하는데, 공통적으로 임나가라 역시 가야에 속하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라는 답변에서 교과서 한국사와 관련된 학계는 어떤 학계인지 궁금합니다. 특히 임나가라를 가야에 속한다는 학계가 어떤 학계인지 그 실체가 불분명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➏ 우리 교과서 한국사를 집필하고 검정하고 평가하는 여러 선생님이 어떤 학계와 관련이 있는지 관련된 학계의 실체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1) 집필진 한철호, 강승호, 권나리, 김기승, 박지숙, 임선일, 조왕호, 조용래가 속한 학계는 어떤 단체인지 그 실체를 구체적으로 설명부탁드립니다. 2) 검정심의회 위원장 최상훈 등이 속한 학계는 어떤 단체인지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3)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조용기 등이 속한 학계는 어떤 단체인지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➐ 교과서를 편찬하는 편수지침에 대하여 궁금합니다. 한국사 편수지침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➑ 학계에서는 광개토태왕릉비문의 임나가라와 교과서의 금관가야를 같은 지역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검정도서 개발을 위한 편찬상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과 연계하여 그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같은 국명(지명)으로 맞대응 되고, 그 편찬 내용이 편수지침과 기준에 어떻게 적합하여 통과되었는지 설명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교과서 한국사에 ”임나가라 역시 가야에 속하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라는 학계의 주장을 수능 공부를 하는 우리 학생이나 학부모는 일방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학자, 학교 선생님, 학계의 주장이 유일하게 옳다거나 능사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역사학계의 전유물이 될 수 없습니다. 역사학자들의 주장에는 불확실하고 비논리적이고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임나가라를 금관가야 또는 가야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과학적이거나 유일한 학문인 것처럼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많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고치거나 개선해야 합니다. 역사학자 스스로 80년 동안 닫았던 마음을 열고 일반 시민과 소통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 [영락] 10년 경자(400)에 왕이 보병과 기병 5만 명을 보내 가서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고구려군이] 남거성(男居城)을 거쳐 신라성(新羅城)에 이르니, 왜[의 군사]가 가득하였다. [고구려의] 관군(官軍)이 막 도착하자 왜적이 퇴각하였다. …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의 종발성(從拔城)에 이르자 성이 곧 귀순하여 항복하였다. 안라인수병(安羅人戍兵) … 신라성(新羅城) ▨성(▨城) … 하였고, 왜가 … 크게 무너졌다. 69개의 성을 모두 지키고 … 안라인수병(安羅人戍兵)이 滿▨▨▨▨其▨▨▨▨▨▨▨言▨▨▨▨▨▨▨▨▨▨▨▨▨▨▨興▨▨▨▨▨▨▨▨▨▨辭▨▨▨▨▨▨▨▨▨▨▨▨▨潰▨▨迫▨ 안라인수병(安羅人戍兵). 예전에는 신라 매금(寐錦)은 몸소 [고구려에] 와서 [나랏]일을 논의하는 적이 없었는데,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國𦊆上廣開土境好太王)께서 … 매금(寐錦)을 … 복구(僕句) … 조공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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