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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번호 20200320085805001 처리상태 답변승인완료
민원제목 조약과 조규에 대한 개념 규정
민원유형 교과서 수정·보완 > 고1~3 > 사회 > 동아시아사 > ㈜금성출판사 > 최현삼 > > 교과서 > 검정 > 2020 신청일 2020-03-20 08:58:05
페이지 130, 139 교과서 종류 서책형 교과서
민원내용 동아시아사 130쪽

"서구 열강의 근대적 조약 체제에 편입된 청은 일본과 대등한 조약인 청일 수호 조규를 맺었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조공 체제와 다른 외교 관계가 성립된 것입니다.

동아시아사 139쪽, 사고력 기르기 2

"청·일 수호 조규, 조·일 수호 조규: 동아시아 지역 내부에서 국제법 질서인 조약 체제가 맺어짐.

청·일 수호 조규: 동아시아 내부에서 처음으로 청과 대등한 조약을 맺음."

이라고 서술했습니다.

'조규'와 '조약'을 같은 내용으로 보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약체제가 소개 · 수용되던 당시, 동아시아 3국에서도 이 새로운 체제의 도래로 말미암아 기존의 질서, 즉 조공(책봉)체제를 어떤 식으로든 재편할 필요성에 직면했다. 그래서 맺어진 것이 청과 일본 간의 ‘수호조규’(1871)이고, 조선과 일본 간의 ‘수호조규’(1876)이며, 또 조선과 청 사이의 ‘상민수륙무역장정(商民水陸貿易章程)’(1882)이다. 그런데, 이들 3국 사이에 체결된 것들의 명칭을 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조약’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청일 ‘수호조규’의 실질적 감독자였던 이홍장(李鴻章)이 조약이라는 용어를 회피한 까닭은, 조약이라는 자구(字句)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일본이 서양과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 했기 때문이다. 조선과의 ‘무역장정’ 역시 그러한 의도에서 나왔다. 청국은 적어도 동아시아권 내의 국가인 일본이나 조선은 과거 또는 현재의 조공국으로, 결코 자국과 대등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미 조약을 맺어 대등한 관계에 있는 서구 열강들과 달리 취급하려 했다. 이런 사실은 조약과 조규, 그리고 장정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고 있는 다음의 청국 측 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정하려는 것은 장정인바 조정이 특별히 허락하는 것이다. 조약은 피차가 대등하게 맺는 약장(約章)이지만, 장정이란 상하가 정하는 조규인 것이다. 그 명칭이 다르니 그 실(實) 역시 같지 않다. -이홍장 전집, 6책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장정이란 조정이 특별히 윤허하는 조규로 상하관계의 나라들이 맺는 것이며, 대등한 관계의 나라들이 맺는 조약과는 그 명칭이 다르기 때문에 그 성질 또한 다르다. 즉, 장정과 조규는 같은 말이나, 조규와 조약은 명실이 상이한 다른 용어이다.
조약체제의 침입을 맞이한 청은 그에 굴복하기보다는 일본 및 조선과 조규(장정)를 체결함으로써 대항하려 했다. 아니, 대항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규라는 ‘트릭(trick)’을 사용해 조약체제를 오히려 기존의 조공체제 내로 흡수하려 획책했다. 청이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일본과 조선은 과거의 조공국 혹은 현재의 조공국으로 자국과 상하관계에 있다고 하는 점이다. 즉, 자국의 하위에 있는 두 나라가 서구의 제국과 조약을 맺어 대등한 관계에 놓였기 때문에 그 서구 여러 나라는 자연히 청의 밑에 놓이게 된다는 점을 노렸다. 결과적으로 조약체제는 기존의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 체제 내로 편입 · 흡수될 수밖에 없는 모양을 띠게 되었다.

당시 그러한 중국 측의 숨은 의도를 일본과 조선이 처음부터 알아채고 심각하게 고민했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다음의 사료가 말해주듯이, 1882년 조선과 청 사이에 ‘무역장정’이 체결된 후 일본이 뒤늦게나마 청의 속셈을 간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나(支那)인의 지론은 조선에게 각국과 평등한 조약을 맺게 하고 또 내치외교를 공히 자주에 맡기면서 모두 지나의 속방(屬邦)이라는 것이다. 즉, 지나는 모든 나라 위에 위치하는 형세가 되는 것이다.-京都大學文學部國史硏究室 編, 『吉田淸成關係文書』 1(書簡篇 1), 思文閣出版, 京都, 1993, 112쪽.

청은 조선에게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조약을 맺을 것을 줄기차게 권했고, 조선 역시 미국과의 조약 체결을 통해 ‘자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1882년 조미조약을 맺는다. 몇 달 뒤 청은 조선에게 ‘무역장정’을 맺을 것을 강요하고는 조선이 청의 ‘속방’임을 명시했다. 이로써, 앞서 말한 것처럼 자국의 ‘속방’인 조선과 대등한 조약을 맺은 해당국들은 자연스레 청의 밑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서방국과의 조약 체결을 끈질기게 권도한 청의 계략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조약과 조규는 같은 개념이 아니며, 조규란, 조공체제도 아니고 조약체제도 아닌 ‘과도기적’ 체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청은 일본과 대등한 조약인 청일 수호 조규를 맺"었다는 130쪽 서술과, "동아시아 지역 내부에서 국제법 질서인 조약 체제가 맺어짐"이라는 139쪽 서술, 같은 페이지 "동아시아 내부에서 처음으로 청과 대등한 조약을 맺음"이라는 서술은 수정되어야한다.

'조규'란 '조약'과 같은 개념이 아니며, '조규'가 대등한 조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판단근거 : 강정숙 외, 역사용어 바로쓰기 , 역사비평사, 조약과 조규편 참조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67XX5640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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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답변

민원 답변 게시판
담당기관 ㈜금성출판사 처리상태 답변승인완료
답변일 2020-04-09 09:51:54
답변내용 안녕하세요.

금성출판사 사회팀입니다.


130쪽은 아편전쟁 이후의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조공체제에서 조약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엄밀하게 구분하면 조약과 조규는 같은 개념이 아니지만,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개설서에서 사용하는 표현들을 활용하여

조공체제에서 조약체제로 변해 갔음을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금성출판사 사회팀


아래는 참고 문헌들입니다.

1. 유용태 외,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창비

135쪽) 청은 구미열강에 대해서는 조약체제를 적용하되 동아시아의 전통적 조공국들에 대해서는 기존의 조공체제를 적용하는 이중체제를 작동시켰다고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당시엔 일본의 미일화친조약과 수호통상조약(1854, 1858), 류우큐우왕국과 미•프•네 간의 통상조약(1854, 1855, 1859), 베트남의 2•2차 사이공조약(1862, 1874), 조선의 조일수호조교(강화도조약, 1876) 등이 체결되면서 이들도 조약체제 속에 편입되기 시작하였다.”


141쪽) 1811년 통신사 파견을 거부했던 일본은 1868년 왕정복고의 메이지유신을 단행하자마자 조선 침략계획을 세웠다. 그러고 나서 국서에 천황국의 지위를 부각하여 조선 국왕을 하대하는 형식으로 국교 재개를 요청했다. 조선이 이를 무시하자 일본은 1871년 만국공법(국제법)에 입각한 청일수호조규를 맺어 청조와 대등한 조약체제를 수립한 다음, 이를 근거로 이제 천황은 황제와 대등해졌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면서 조선을 압박했다.


2.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휴머니스트

53쪽) 동아시아의 내부 질서가 변화를 맞이한 것은 1871년에 체결되고 1873년에 비준된 청일수호조규에 의해서였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책봉-조공 관계와는 다른 외교 관계가 맺어진 것이다.

54쪽) 그해 9월 청일수호조규와 통상장정이 조인되었다. 그 내용은 영토 보전과 상호 원조를 규정하고 서구 열강에게 강요당했던 영사재판권과 협정관세권을 서로 인정하는 등 일종의 변칙적인 대등 조약이었다. (중략) 청일수호조규 체결은 청의 방침, 즉 조약 관계는 서양 각국과의 관계에 한정한다는 자세가 전환된 것을 의미하고, 이는 동아시아 지역질서가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3. 신성곤 외,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서해문집

291쪽) 중국을 둘러싼 국제관계가 변화하는 가운데, 과거 중국에 조공을 바쳤던 일본은 중국과 근대적인 조약인 청일수호조규와 통상장정을 체결했다.(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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