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변내용 |
안녕하세요. 비상교육입니다.
문의하신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탐라의 대외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일 먼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백제와 밀접했는데, 476년(문주왕 2) 4월에 사신을 파견해 방물(方物, 토산물)을 바치고 그 사신은 좌평의 관등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498년(동성왕 20) 8월에는 공부를 바치지 않다가 백제 동성왕이 친히 정벌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사과하고 공부를 바칠 것을 약속하기도 하였지요. 고구려와는 가옥(珂玉)을 수출하는 등 교역하기도 했지만, 백제에 복속된 이후로는 교섭이 두절되었습니다. 한편, 신라와는 662년(문무왕 2) 2월에 탐라국주 좌평 도동음률(徒冬音律)이 와서 항복함으로써 이때부터는 신라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신라 말에 이르면 점차 복속 관계에서 벗어나, 신진 세력인 고려와 우호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에 925년(태조 8) 11월 사신을 파견해 방물을 바치게 되죠. 938년 12월에는 탐라국주 고자견(高自堅)이 태자 말로(末老)를 파견해 입조하고, 고려로부터 신라의 예에 따라 성주·왕자의 작위를 받아 고려의 번국으로서 독립적인 체제를 유지해 나가게 됩니다. 그 후 1105년(숙종 10) 고려의 지방 행정 구획인 1개의 군(郡)으로 개편되면서 반독립적인 체제는 마침내 사라졌습니다.
이와 같은 대외 관계에 기반하여 탐라의 영토색을 칠하게 되었습니다. 백제에 복속된 이후에는 백제의 영토색을, 문무왕 이후에는 신라의 영토색을 칠한 것이지요. 따라서 5도 양계에 해당하는 지방 행정 조직이 모두 마무리된 현종 시기에는 탐라가 아직 고려의 속국이 아니기 때문에 영토 표시를 현재와 같은 색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여겨집니다. 아울러 이 부분은 지도 표기 시 탐라 영역에 대해 통일하라는 교육부의 수정 지시에 근거하여 작업한 것으로, 교육부의 검정 승인이 이미 완료된 사안입니다.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는 비상교육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