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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번호 20150131004131001 처리상태 답변승인완료
민원제목 이런 비논리적 답변이 어디 있어요?
민원유형 교과서 내용·정보 > 고등학교2 > 사회 > 한국사 > ㈜비상교육 > 도면회 > > 교과서 > 검정 > 2014 신청일 2015-01-31 00:41:31
페이지 교과서 종류 서책형 교과서
민원내용 20150118234813001번 절문에 대해 비상교육에서 '근거가 되는 삼국지 위지동이전에서 준왕이 기자의 후손이라고 되어 있다'면서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의 법통은 인정하는 게 아니라'고 답을 했습니다.이게 말이 되는 논리인지요? 준왕을 쓰려면 기자조선을 인정한다고 해야 말이 맞지 않나요?
그리고 고교 한국사 21쪽에 분명히 "위만 조선...고조선..."이라고 하여 위만조선이 고조선의 법통을 이은 것 내지 정권을 장악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법통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앞과 뒤가 맞지 않는 답입니다. 분명히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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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답변

민원 답변 게시판
담당기관 ㈜비상교육 처리상태 답변승인완료
답변일 2015-02-02 17:08:05
답변내용 안녕하세요 비상교육입니다.

문의 주신 내용에 답변드리겠습니다

준왕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 부왕의 아들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 蒙恬을 시켜서 長城을 쌓게 하여 요동에
까지 이르렀다. 이 때에 조선왕 否가 왕이 되었는데 진나라의 습격을
두려워한 나머지 진나라에 복속을 하였지만 조회에는 나가지 않았다.
부가 죽고 그 아들 準이 즉위하였다.
《三國志》권 30, 魏書30, 烏丸鮮卑東夷傳30, 韓인용《魏略》

그리고 이후 위만에 의해 축출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한나라 때에 이르러 盧綰으로 燕王을 삼으니 朝鮮과 燕은 浿水를 경계로
하게 되었다. 노관이 漢을 배반하고 匈奴로 도망한 뒤 연나라 사람 衛滿도
망명하여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準에게 항복하였다.
《三國志》권 30, 魏書30, 烏丸鮮卑東夷傳30, 韓인용《魏略》

고조선에 대해서는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계보를 보는 견해, 단군조선-기자조선으로 보는 견해 등 이들의 존재 시기와 중심지 및 사회 성격 등과 관련하여 현재까지도 상당한 견해차를 보이며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기자조선은 기원전 12~11세기경 기자의 이주로부터 시작하여 기원전 2세기 초 조선왕 準에 이르기까지 거의 천 년을 이어 온 것이라고 하였지만 기자의 동래에 대한 문헌이 남아 있지 않아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위만 조선 성립 이전에 국가로서의 조직체가 갖추어진 것으로는 사료로 이해할 수 있지만, 계보를 적시하는 것은 여러 가지 견해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료가 명확한 준왕만을 교과서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간의 오해가 있으신 거 같긴 합니다만, 저희가 설명드리고 있는 내용과 그 요지는
위의 말씀을 통해서 갈음이 될 거 같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서술은 학계의 보편적인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서술 관점은 저희 교과서뿐만 아니라. 이전 국정 교과서, 현재 다른 교과서들에서도 유지되고 있는 입장입니다.
아무쪼록 저희 답변이 선생님의 질문에 적절한 답변이 되길 바랍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비상교육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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